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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추천도서/책 추천] 깃발의 세계사
엄청난 솜꼬리큰토끼
2022-02-19 17:22:48

누군가 나에게 태극기를 그려보라 말한다면, 장담컨대 분명 엉터리 태극기를 그리고 말 것이다.

아무리, 아무리 봐도 건-곤-감-리, 네 괘의 순서가 통 외워지지 않는다. 태극무늬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나뉘는 방향은 언제나 나를 혼돈 속으로 초대한다. 심지어 언젠가는 '도대체 우리나라 국기는 왜 이렇게 어렵게 생긴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조금 더 쉽게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가 태극기를 좀 더 떳떳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자기 나라 국기면서, 정확하게 그릴 줄 모른다는 사실이 무의식중에 퍽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태극기 앞에만 서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깃발 하나에 내 마음과 행동을 바로 세우게 된다는 것은 퍽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이 국기의 힘이다. 태극기를 보고 자세를 고쳐 잡는 사람을 보고 수군거리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말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기 나라의 국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디에나 또라이는 있기 마련이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제목처럼 굉장히 방대한 양의 국기(및 깃발)를 다루고 있는 책 <깃발의 세계사>. 그중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도 있었다. 남한과 북한의 국기를 대조하며 태극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현재 남한의 국기 태극기는 남북한이 분단되기 전 한반도의 국기였다고 한다. 음과 양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태극 문양, 그리고 태극 문양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괘는 하늘, 물, 땅, 불을 상징하며 하얀 바탕은 순수와 청결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분단이 되며 남한과 북한 모두 별개의 국가를 꾸려가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남한은 과거의 태극기를 그대로 승계한 것에 반해 북한은 지금의 국기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약 3장에 불과한 짧은 등장이었지만, 나에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국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곧 현재 별개의 국가 형태를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문장이 오래 가슴에 남았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각기 다른 국기를 펄럭이고 있으면서 남북한의 관계가 개선이 되었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단체라도 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들만의 깃발을 통해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국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곳이 한 나라라는 것을 그 무엇보다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어쩌면 통일의 첫걸음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한반도의 깃발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각기 다른 국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연합체라는 것을 상징하는 EU의 깃발처럼, 한반도의 깃발이 생긴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깃발의 세계사
팀 마샬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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