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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믿는 인간에 대하여
엄청난 솜꼬리큰토끼
2021-10-24 11:12:19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잘 살아가는 것일까?

이보다 더 막막한 질문도 없을 것 같다. 아무리 하루를 살아내고 또 살아내도, 확신은커녕 의심만 쌓여간다.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의 저자 한동일은 가톨릭이라는 단단한 종교적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신자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 대해 많은 성찰과 고뇌를 하며 살아왔을 그였지만,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를 통해 찾아보고자 하였다.




사실 나는 종교적 차원에서 깊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책의 머리말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종교'라는 단어가 솔직히, 무겁게 느껴지긴 했다. 모든 종교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지니고자 노력하기에 혹 무언가 강요하는 듯한 문장을 만나게 되진 않을까,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었다. 그에게 종교는 훨씬 큰 범위의 문화였고 그 문화에서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모든 인류가 바라는 희망과 기대감이었다. 그 관점에서 종교인으로서 더욱 책임감을 느끼며 이 시점에서 종교의 역할을 숙고하는 겸손한 태도에 닫혀있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중 식별이라는 단어가 나에겐 퍽 인상적이었다. 

라틴어를 공부한 저자의 설명을 빌리면, '분별하여 알아봄'을 의미하는 디스크레티오(discretio)는 '갈라놓다, 분리하다, 식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디셰르노(discerno)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는 베네틱토 성인의 중용사상을 나타내는 말로서, '과격하거나 지나치지 않음과 깊은 생각에서 나온 절도 있는 태도'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식별이라는 단어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그 지점이 인상적이었는데, 가능과 불가능을 구분한다는 태도가 굉장한 용기를 수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격하거나 지나치지 않는다'라는 말은 욕심을 덜어낸다는 말이다.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포기와 단념과는 다른 개념이다. 오히려 현실을 똑바로 주시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성찰과 다짐이 결부된 보다 승화된 개념이다.




하고 싶은 일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을 혼동하고 있다 생각한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는,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식별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의 마음은 꽤 오래 머물러 있었다. 과연 나는 올바른 식별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할 수 있음에도 보지 않았던 것은 없는지, 할 수 없음에도 부러 우기고 있지는 않은지 오래도록 질문해 보았다.


아, 식별의 혜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
한동일 /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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