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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질병과 함께 춤을
2021-09-08 22:08:50

세상 그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또 다른 아픔을 얻지 않기를

자책감과 고립감으로 밤을 해매던 이들을 위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이 몸으로 써내려간 이야기

잘 아플 권리, '질병권' 이라니 이건 무슨 말일까. 아프다고 삶이 끝난건 아니지만 아프면 삶이 끝난것 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고 질병 또한 끝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아파해 왔던가? 이 책은 아픈몸에 대해 낯선 질문을 던진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씩은 아프고 만성질환 하나쯤은 개성처럼 달고 산다. 그럼에도 모두 건강 중심 세계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볼 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에 아픈 몸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아픈 몸을 보면서 '부족'하고 '열등'하다고 낙담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사회는 우리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여기까지는 질병이고 저기까지는 건강이며 거기부터는 장애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종종 우리 몸 안에서 질병, 건강, 장애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p. 15) 이것을 과연 언어화할 수 있을까? (중략) 우리의 이 '문제적 아픈 몸'은 건강 중심 사회에서 '실패한 몸'이 아닐 수 있을까? (p. 16)

어떤 질병이 유행할때 그 질병에 효과가 좋다는 건강식품도 함께 유행하곤 한다. 수명이 길어진 현대사회는 늘 건강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건강을 '정상성'의 프레임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건강하지 않은 몸은 비정상이고 실패한 몸이라고 판단하는 선입견을 가져왔음을 깨달았다. 저자의 말마따나 정말 만성질환 하나쯤은 개성처럼 달고 사는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정말 건강한 몸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찾아보면 사실 정말 건강한 몸을 찾긴 힘든데 왜 우리는 그 허상을 쫓아왔던 것일까?

이 책은 '질병춤' 구성원들이 짧지 않은 시간을 관통하며 몸으로 써내려간글을 수정, 보완해 묶은 것이다. 이는 당연히 질병을 어떻게 극복했다거나 질병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서사가 아니다. 아픈 몸에 대해 끊임없이 '해명'하길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해명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픈 몸들이 질병과 공생하는 고유한 삶에 관한 '사소한'이야기이며,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온몸으로 분투하며 해석한 이야기다. (p. 19)

이 책은 '아픈 몸'을 지닌 이들이 3년여 동안 워크숍을 하며 깨달았던 내용들을 모아쓴 '질병 서사' 이다. 그 모임의 이름이 '질병과 함께 춤을' 이었다. 질병이 있다고 해서 힘들고 아프기만 할 필요가 있을까? 춤을 출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개개인의 아픈 몸이 다른만큼 각각의 질병 서사도 달랐지만 전문작가가 아닌 이들이 쓴 글은 날것 그대로의 진실이라는 힘이 있었다.

질병은 우리 몸을 변화시켰고 고통을 주었고 삶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맸고, 그 길을 가길 권장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픈 몸으로 어떻게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p. 20) 질병이 우리 삶을 낚아채서 세차게 내동댕이치는 것 같지만, 사실 상당 부분 우리 삶을 뒤흔드는 것은 생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임을 점점 더 명확하게 보게 됐다. 그리고 질병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파고들수록, 우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노동조건, 성차별, 성폭력, 빈곤, 환경, 기후위기, 건강 중심 주의 등의 문제가 우리 몸에 스며 있음을 면밀히 확인하게 됐다. (p. 21)

책의 본문은 4명의 각기 다른 '질병 서사' 를 담고 있다. 각각 다른 아픈 몸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아픔이 온전히 전달되는 것 같은 진솔한 글들이었다. 난소낭종을 비롯한 식도염, 치질 등 직장인으로서의 만성 질환을 다수 보유한 사람부터 조현병, 지체장애, 류머티즘 을 앓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사람이 마치 내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을 엮고 질병춤이라는 모임을 이끈 조한진희는 이들처럼 다양한 시민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을 말하고 그렇게 연대하고 그렇게 질병권(잘 아플 권리)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권한다. 이 책의 말미에는 그러한 주장들을 정리한 선언서가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아직 더 많은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프면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고 개인을 탓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진 믿음이 아픈 사람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알면서도 이를 버리지 못했다. (p. 62)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건강하기 위해선 신선한 야채와 잡곡밥 위주의 건강한 밥상을 마련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충분히 휴식하면 된다. 문제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p. 64) 대부분의 고통이 그렇듯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몸으로 일을 하고, 일상을 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서 변한 것은 나 자신이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비난하지 않으려 애쓴다. 나의 노동과 건강에 얽힌 사회적 맥락을 읽으려고 한다. 건강해야 한다는 압박이 무엇이고, 이런 압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성찰한다. (p. 83)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질병 경험을 드러내는 순간,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순간 이는 더 이상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나의 질병 서사를 꺼내는 것 자체가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작고 느린 움직임에 함께할 수 있어야 벅차다. (p. 86)

4가지의 사례 중 첫번째 글이 가장 일반적으로 읽히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도시로 출근하지만 집값이 비싸서 외곽에 사느라 장거리 출퇴근에 밥때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맞벌이 부부, 여성질환에 대해 자책하게끔 하는 집안 분위기, 흔한 이야기 같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상의 질병들 그 이야기들을 개인적 소회가 아니라 사회적 프레임으로 읽는 순간 개인적 책무에서 해방될 수 있다. 어떤 질병은 내 탓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질병이 내 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늘 너는 이상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던 내게 이들이 주는 위로는 감미로웠다. (p. 116)

'내 삶에 분명히 있지만 없는 것으로 여긴 것 중 하나가 질병이었다. 그것은 쉽게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적 자원이 취약한 사람에게 '정신병자'라는 낙인은 무서운 것이었고 자칫 소외와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p. 142)'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많은 시간을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현병과 함께 하는 사람의 글은 그 병만큼이나 혼란스러웠지만 그 혼란만큼 마음아프기도 했다. 우리는 정신병에 대한 낙인이 강한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삶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질병'이 아니라 '장애'였다. (중략) 하지만 내게는 선천적으로 걸을 수 없는 질병이 있었다. (p. 161)

'의료 기기는 '정상'이라 말하는 몸에 맞춰진 검사 기구다. 나처럼 몸이 많이 틀어지고 휘고 구축된 사람들에겐 소용없을 때가 있다. (p. 172)'

지체장애의 삶을 살게 되면서 세상이 방한칸으로 정해졌을때 그 시작은 장애 이전에 '질병'이었다. 장애에 초점을 맞춘 책들은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장애 이전에 혹은 그 이후에 '질병'에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깨닫게 했다. 글쓴이는 불편한 몸으로 참 많은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장애극복기가 아니다. 질병 서사다.

질병이 찾아오고 나서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모두 조금씩 비틀어졌다. (중략) 병에 걸린 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 시간을 들여야 했다. (p. 214)

성차별과 성폭력의 경험으로 류머티즘 까지 앓게된 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청춘의 나이였다. 의료비지원대상이 아닌 질병과 함께 산다는 것,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병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회구조적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불가능한 회복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질병이 있는 몸에 맞는 업무의 양과 속도를 의논하는 것이 더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 '건강한 몸'으로 회귀할 것을 강요하는 대신, 일하는 사람이 자기 몸의 상태와 변화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고, 그것이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애써야 한다. 질병을 앓는 이들이 몸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이 '배려'나 '시혜'를 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 몸 상태에 걸맞은 노동을 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p. 231)' 질병권은 개인적 권리 고통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정보의 불균형과 발언권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질병인들은 자신의 질병과 증상, 원인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또한 의료 전문가들은 질병인들이 질병을 앓는 과정에서 겪는 경험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p. 240)

질병은 의료인과 의료현장에 대한 문제점을 함께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친절한 의사는 참 드물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의사에게 환자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의료현장뿐만이 아니다. 가족도 직장사람들도 질병에 대해 하는 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현실이 아닌 단지 '질병 이전의 삶'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왜 매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불가능의 영역을 희망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가 가진, 질병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과도 멀지 않다. 사회는 '완치'를 목표로 설정하고, 질병인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치료법이 없는 질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한부 판정을 받지 않는 이상, 치료약이 없음에도 개인이 노력하면 나을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p. 255)' 글쓴이의 일상은 차라리 시한부 삶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치료약도 없고 의료비지원도 되지않는 음성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글쓴이에게 주변사람들은 '완치'의 위로를 건낸다. 하지만 불가능한 목표는 자책감을 만들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질병과 리듬을 탄다는 것인데, 이는 건강 중심 세계가 규정한 질서에 맞추는게 아니라, 아픈 몸에 맞는 질서인 질병권에 맞춰 삶을 재구성해보는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운 아픈 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해지라는 요구보다는 잘 아플 권리이고, 이를 통해 보다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아프다는 것이 의구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 병명으로 삶의 고통이 재단당하지 않는 사회, 몸이 아픈 사람도 원하는 만큼의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질병이 빈곤과 불행이 아닌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인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이기 때문에 의존과 취약함이 인간의 보편적 속성으로 수용되는 사회, 의존과 취약함이 보편적 속성이기 때문에 돌봄을 주고받는 게 인간의 덕목,권리,의무,기쁨인 사회이다. 이를 위해서는 질병과 아픈 몸을 사회정치적으로 해석해내는 서사가 필요하다. (p. 259~260 中 발췌)

그래서 이 책을 엮은이는 '저항적 질병 서사'를 제안했고 그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이 책이었다. 구성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로의 아픔을 공감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질병과 함께 사는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몇 차례의 토론과 시민의견을 수렴하며 <아픈 몸 선언문>이 작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선언문은 아직 '작성중'인 상태다. 엮은이는 '지금도 <아픈 몸 선언문>은 열려있다. 누구나 의견을 보탤 수 있다. 아직 울퉁불퉁한 이 선언문에 다양한 시민들의 경험이 더해져 좀 더 깊이 있는 선언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p. 268)' 고 말하며, '이 선언문은 당신에게 보내는 저항에의 초대장이다. 이제 우리의 연대에 함께하자. 우리에게는 저항하고 연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p. 279)'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우리는 사실 늘 아프다. 살다보면 여기저기 쑤시고 나이가 들수록 만성질환을 달고 산다. 그런데 왜 우리는 건강한 몸만 이야기하며 아픈 몸에 대해서는 숨기려고 애써왔을까?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아픈 몸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해하고 좀더 잘 아플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 이제 선택의 순간이다. 이 책이 보내는 초대장을 당신은 받을 것인가?


질병과 함께 춤을
다른몸들,조한진희 (엮음),다리아,모르,박목우,이혜정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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