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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평]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엄청난 솜꼬리큰토끼
2021-06-27 21:13:30



본 방송을 챙기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최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재조명하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정말 갓난아이였을 때,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했다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세간의 충격과 공분을 샀다. 그도 그럴 것이,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상,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준다. 게다가 백화점이란 곳은 무릇 직원과 고객이 만나 그 안에서 자신의 노동을, 그리고 여가를 보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런 공간이 강남 한복판에서 힘없이 무너져내렸을 때의 충격과 공포, 그리고 배신감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책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저자 산만언니는 붕괴되는 삼풍백화점 안에서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행운의 소녀였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행운이었을까? 저자는 말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 사건 이후 자신은 평범하게 행복할 수 없었다고. 그날의 사건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물론 저자는 자신의 불행이 오롯이 삼풍 사건에 기인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삼풍 사건이 자신의 불행을 더욱 짙은 색으로 물들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벌어졌던 불행의 서사를 책을 통해 고백한다. 삼풍 사건이 있기 전과 후, 자신의 삶에 펼쳐졌던 사건들을, 담담하게.

개인적으로 책이 딴지일보의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의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한 편의 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저자가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의 초반부에는 삼풍 사건과도 관련 없는, 저자 개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조금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불행을 있는 그대로 불행이라 말하는, 심지어 자신의 불행을 통해 누군가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저자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삼풍 사건 이전에도 충분히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에게 더 큰 괴로움이 발생한 것 같아서, 그런 현실을 견디며 직장 생활까지 해내었다는 저자가 어떤 하루하루를 보냈을지 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희망을 말하는 저자의 문장이 더 뜨겁게 가슴에 와닿았던 것 같다. 진심으로 느껴져서.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진심이어서 있는 그대로의 문장을 품을 수 있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시선 역시,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어서 보다 집중해서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세월호 사고가 왜 다르게 다뤄져야 하는지,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 우리가 왜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주어서 그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더욱 절감할 수 있었다. 잊지 말자. 모든 것이 불분명한 사건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눈과 귀를 열고 계속해서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언급하며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책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는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책이 아님에도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매순간 살아남은 저자가, 감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스스로를 약하다 말하지만, 내가 본 저자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다. 저자는 자신의 불행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는 저자가 자신의 삶을 그저 불행의 키워드로 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미 저자 본인도 알고는 있지만, 지금의 저자가 있기까지 그 투쟁의 매순간은 분명히 빛나는 기록이었기에, 나는 부디 저자가 이제는 조금 덜 괴롭고 훨씬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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